神 2편_일본과 우리나라는 여우 신이 있다.
이전 글을 정독하신 분이라면,
콩에 대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래서
진시황이 불로불사 연구를 하다가
만들어낸 음식이 두부라는 사실은
잘 알 것이다.
불교 사찰과 제사 음식에도 빠지지 않는
두부 이야기에 관해
일본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일본은
1200여년 동안 육식을 금지했다.
심지어
섬 나라 특성상 기후변화가 좋지 않아서
보관에 취약하지 않는 음식이 개발된다.
그중 ‘유부’가 있다.
油腐, あぶらあげ(아부라아게)라고 불린다.
채식주의를 했던 일본에게는
두부란 쉽게 상해 개발된 음식이었고,
유부는 땅이 척박해 쌀이 귀했던
산간지방에서 많이 애용되었다.
그래서
‘유부’ 관련 특이한 문화를 찾아 볼 수 있다.
유부초밥은
이나리(稲荷-여우신)스시,
유부우동은 키츠네(きつね-여우) 우동
부른다는 것이다.
왜 ‘유부’를
‘여우’라고 부를까?
일본 사찰은
우리나라처럼 산신각 자연신앙뿐만 아니라
그외 존재들. 사람까지 숭배 사상을 둔다.
그 중에서
여우-이나리 신사(稲荷神社)는
3만개 이상 존재한다.
일본 사찰 비중의 3분의 1만큼
차지할정도로 엄청나다.
이나리(여우 신) 신사는
왜 그렇게 많을까?
일본은
신의 사자로 불리는 ‘여우’신을
5세기 후반부터 모셔졌다.
농작물 피해를 주는 쥐를 잡아먹어 줘서
풍작•장사 번성을 기원해준다고 믿었다.
(이집트 고양이 신과 똑같다.
이집트 신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그래서
유명 기업 사업체 내부 혹은 옥상에도
여우신을 모시는 제단을 갖출 정도라고 한다.
여우신이 이루어주는 것은
다산(사랑)•농상업•성공이었다.
16세기부터는
대장장이와 무사들에겐 수호신으로,
바닷가에서는 어부들의 신으로,
환락가에서는 창부의 신으로,
현대사회에는
사업번창•안전•예능통달 등
영험이 점차 확대되었다.
이나리 신사는
교토. 후시미 이나리가 총본산이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황실 구성원들도 이용하고 있다.
고대 천황들까지 자주 제물을 올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여우신에게 쥐를 공양했다.
서기 675년
40대 천왕 덴무 덴노가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육식금지령을 내린다.
소•말•개 등 네발 달린 포유류 중심으로
살생시 처벌을 내렸다.
그래서
이나리 신사에 올리는 공양물도
쌀자루 모양 두부-‘유부’로
공양을 올리게 된다.
일부 신사 앞 골목에는
여우신에게 올리는 제물 ‘유부’를
따로 판매될만큼
정착된 공양물이 되었다.
우리나라 여우신은 어떨까?
다양한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먼저, 일본 사서에 따르면
삼국시대
한반도 바다(海)에서 건너왔다는
의미가 담긴 하타오리(機織)-하타씨 일족의 영향으로
여우 신앙이 전파된 것이라고도 보고,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
‘산해경’에서 등장하는 신수(神獸)가
알려진 것이라고도 보고 있다.
신수(神獸) 여우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게 억울할만큼
사악하지않다는 점이다.
민속학을 전공한 사람이면
충분히 알려진 지식이 있는데,
산에는 주인이 있다는 것.
산주(山主),
산신령이 존재한다는 것.
1만년이 넘는 시간이 담긴
오래된 전통이다.
바로 우리나라에는
산마다 남녀 신이 나뉜다는 것이다.
산신 할아버지 산이 있고
산신 할머니 산이 있다.
할아버지 산신령님 계시는 산은
육산이라고 부르고,
고기 제물을 받으시는 경우가 있다.
할머니 산신령님 계시는 산은
소산이라 부르고,
작물 제물을 받으시는 경우가 많다.
육산, 소산마다
다양한 천신(天神) 계통의
신령님들이 내려와 계신다.
그 중에서도
한국 땅에서는 인간들에게 모함 받고
멸시 받아 사라져 갔던, 여우 신이 있다.
산주가 돌봐주시는 신앙 아래
아주 먼 옛날.
산을 지키는 신령(神靈) 중
여우와 선녀님이 계셨다.
일부 요괴라고 칭하며
구미호라 부르지만,
고전부분에서 살짝 왜곡된 부분이 있다.
다음 고전 자료를 찾아보면
여우 신에 대한 존재를
알 수 있다.
-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는데, 털은 밝고 희고 꼬리가 아홉 개가 달린 짐승이 서책(書冊)을 입에 물고 상서(祥瑞)함을 나타내는지라. 이에 고시씨(高矢氏)에게 상을 내리고 나라 안에 음악을 연주하고 즐김을 다하라고 영을 내리고는 또한 ‘조천무(朝天舞)’를 지었다. (중략) 신사년은 여을 임금의 원년이다. 태백산의 남쪽에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는데, 꼬리는 아홉에 흰 털을 지니고서 흡사 늑대 같았으나 사물을 해치지는 않았다.
- "팔백이와 여우"에 나오는 여우 아가씨는 팔백이와 결혼해 인간이 된 이 예비 신령님은 진정으로 사랑을 위해 다 잡은 산신령의 지위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
다들 알다시피
신라시대는 가장 오래까지
토속신앙을 우대 했었다.
신라시대
'여우가 신(神)으로 숭상 받았다'
기록과 설화는
천 년의 시간을 넘기면서
조선시대로 오고,
이 이야기들은
어린 학동에게 구슬이나 빼앗기거나
남자를 홀리려다 몽둥이에 맞아 죽는
극단적인 결말로 맞이한다.
이러한 이유는 시간에 따라
승려와 무당가 사제에서 천민으로 추락했던 것처럼
여우도 같이 하락이 되었다는 것으로,
<삼기산 흑여우신의 죽음> 이야기에서
토속종교의 쇠락 상징을 찾아 볼 수 있다.
장군님께서 말을 타고 다니시는 것
대신 신령님께서 동자님 데리고 오시는 것
산신령님께서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시는 것처럼
선녀님들을 총괄한 중국 도교
최고의 선녀 신령님-서왕모는
구미호를 데리고 다녔다.
도교 신들에 관해
다음 시간이 나면 써보겠다.
현재 모으는 기록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들이
굿을 하던 일, 성불 보았던 기록,
왕권 반박으로 성리학자들에게
박해 받던 사례들,
무교가 왜 지금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정리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전통을 살리고,
신도들의 소원 성취를
무탈하게 이루게 돕는 일.
발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