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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신당의/일기

신병의 시작-2

by 진홍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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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알고 있었다.

 

태어났을 때

어머니 태몽은 무당 아이라는 것

미리 아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잣말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 이야기하고

(그 당시 나는 내면의 상상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몽롱한 적이 많았다.

 

일찍이 재물운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생 나이에

어머니에게 훈수를 두기도 했다.

- 이 집 팔면 안돼. 전세로 놔.

오를거야.

 

무슨 근거로?

 

부적이 붙여진 현관이나 식당을 보면

마음 속으로 따라 그렸다.

 

예지몽을 종종 꿨다.

어머니에 대해 예언하고

나랏일을 알았다.

선명하고 신기한 꿈을 많이 꿔서

꿈해몽 사전을 자주 읽었다.

 

남들이 잘 신경 쓰지 않는 것에 눈을 두었다.

어른들은 이런 나를 영특해했다.

성숙하다고 했다.

 

 

 

2005년

초등학생 때 신병이 조금씩 강하게 왔다.

 

등하교 길부터 학교 옥상까지

자살시도를 수 없이 시도한 것

 

결국

우울증이라는 진단으로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폐쇄병동에 2달간 입원했다.

 

+ 비하인드

당시 담당의께서 우리 모녀가 신병 앓는 모습을 보시고

관련 연구하러 떠나셨다고 한다.

 

 

2013년 가을

첫 아이를 낳고

할머니께서 몸주로 오신 것.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전남편이 소름 끼쳐 할 만큼

말투가 변했다.

 

우울증과 해리성 다중인격

판정

 

가위를 눌리기 시작했다.

잠들기 무서웠다.

귀신을 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2015년 겨울

둘째 아이 낳으면서

동자님을 느낀 것

 

초코렛을 엄청 먹었다.

단 거를 잔뜩 사서 한박스씩 비웠다.

 

그리고

점점 불안하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느끼고

북한산 아래,

방송에 나오셨던 무당 분께

신내림 테스트를 받았다.

 

신장대를 붙들고

악기 소리에 부르르 떨었다.

신령님들을 부르고 울부짖으며

신령님들의 물건을 받았다.

합격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무당이셨을 때

무서웠던 기억이 커서

싫었다.

 

생각을 조금 더 해보겠다고

돌아왔었다.

 

2016년

이혼을 했다.

그리고

자해를 했다.

이유를 몰라 당황했다.

정말.

왜?

 

불안증 판정

 

그리고 2017년 2월

대기업을 퇴사했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다닐 수 없었다.

몽롱하고 혼란스러웠다.

 

 

 

순례길을 가서

정신을 재정비하고 싶었다.

해외 여행동안 육체 건강은 괜찮다.

하지만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다.

왜?

모르겠다.

 

2017년 가을

신병이 심해졌다.

 

해리성 인격장애

다중인격과 기억 장애를 일으켰다.

 

순천항대 정신의학과 폐쇄병동

2주간 입원 치료 후

자진 퇴원

 

2018년

지간 축술미형국을 가진 자에게

최악의 해 무술년

 

재성(돈과 재주)

관운(직장과 소송,여성에게는 남편)

신병이 다가왔다.

 

재혼 실패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세례를 받았다.

 

 

성당에 자주 갔다.

참 많이 울었다.

 

 

 

재물과 대인관계를 풍지박살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오해가 생기고 멀어졌다.

또 다른

신병 작용이었던 것 같다.

 

재물 손해과 관재(법적 관련 일)

수 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판단을 못하게

몽롱하게 만드는 일.

 

직장을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다.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날정도.

 

2019년

앞서 말한 것처럼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렸다.

 

법원과 경찰서를 몇 번을 간 걸까.

고소장을 몇 번 쓴걸까.

 

카카오 그룹채팅을 하다가

손금 이야기가 나오고

어떤 분이 나에게 물어봤다.

- 이거 어떻게 읽어요?

- 아, 이건 운명선이고, 이건 감정선인데 ..

 

2019년 봄

순식간에

손금을 외우고

사람들을 봐주고 있었다.

 

 

몇 시간 넘게 손금을 본 날

저녁에 누우면 머리가 아팠다.

지끈지끈

 

시간이 지날수록

두통은 물론

눈 앞에 파노라마-환각이 펼쳐졌다.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2020년 1월

취객에게 폭행 당했다.

고소를 하고 합의해줬다.

관재수가 지독했다.

그리고

내 아이 죽은 일

 

신병은 더 강하게 들어왔다.

악몽을 꾸고

안 아픈 부위가 없었다.

 

2020년 5-9월

 

2주간격으로 생리를 하더니,

하혈이 시작되었다.

3개월이 넘어가고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자궁과 복부 통증까지 왔다.

 

사주와 손금 없이

점사가 나왔다.

이미지가 보였다.

 

관재수(소송)와 구설수(인성운)

시작했다.

 

평소 구설수에 관대한 편인데

직장내 말도 안되는 구설수와

직속 상사가 업무적으로 너무 힘들게 했다.

역대급이었다.

 

2020년 10월

신령님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점점 들린다.

 

힘든 날에 의식적으로 술을 사게 하셨다.

- 저 쪽에 백세주를 팔고, 저 쪽에 초를 판다 ..

초를 켜고 술을 올린 뒤 엉엉 울었다.

 

 

신령님들께서 한 분씩 나타나시며 위로해주셨다.

- 견디거라. 견뎌야한다. 그리고 이 세계로 오거라.

선명한 목소리. 신비한 밤.

 

 

글문으로 자주 나타나셨다.

 

생각하던 것이나 고민하는 것이 있으면

글을 적어 내리셨다.

(어찌보면 나는 받아쓰기처럼 적은 것이다.)

 

할머니 신령님께서 해주신 말씀

 

할아버지 신령님이 해주신 말씀.

 

 

 

 

2020년 12월

도저히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

 

관재(소송)

인성(구설수)

재성(돈)

건강(하혈과 온 몸의 통증)

 

선녀님이 느껴지면서

계속 화내셨다.

- 그만 두라고. 가지마!

 

죽을 것 같았다.

 

 

퇴사후 강원도 낙산사에 갔다.

관세음보살님께 인사하러 가는 길.

바람이 부는데,

산신령님 오셨구나-느꼈다.

 

2020년 12월 23일

도령님께 다시 한번 더 찾아갔다.

 

다행히 기우는 같은 신기가 있는 친구였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당장 모셔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고

신령님들께서 이해해주셨다.

 

이제 이 길을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잠시만

천천히

 

 

2021년 1월 1일

신령님들께서 명패를 보여주실려고 하셨다.

대신 할머니 신령님이 때가 아니라고 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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